이런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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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상상공동체

06.08.22          By Hong

민족이라는 단어는 애매하다. 학적 규정이 불가능하다.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함께 산 집단을 민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인종이 같으면 같은 민족일까? 아니면 같은 문화권에 살면 같은 민족이라 부를 수 있나?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은? 눈동자 색깔이 같은 집단? 아니면 한 국가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민족이라 부를 것인가? 위와 같은 모든 물음들은 민족이라는 단어의 개념 설명을 위해 학자들이 고민했던 흔적들이다. 학자들의 최종 결론은 '민족이란 그들이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결국 마무리 지어졌다. 이는 앤더슨의 결론만은 아니었다. 우리 가슴속에 2002년의 뜨거움을 지폈던 민족이라는 단어의 실체는 다만 상상이었다. 조금 억울하다. 그렇게 뜨거웠었는데 민족의 실체가 없는것이라면 왜 우리는 민족이라는 단어에 뜨거움을 느꼈을까.

민족이라는 단어가 외국산이기에 이 단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영어를 차용해야 할 듯 하다. 영어로 국가와 민족은 같은 단어다. NATION. 근대 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 민족이라는 단어가 발명됐다.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말도다르고, 눈 색깔도 다르고, 살아온 방식, 문화, 머리 색깔도 다른 여러 사람들을 묶어야 했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인종도 다른 그들을 하나의 국가 내에 구겨 넣기 위해서는 심적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민족이다. 한 국가에는 국기가 있고, 국가가 있고, 지도자가 있다. 그러한 상징물 외에도 항상적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시민들이 가슴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 바로 내 나라 내 민족이다. 나는 어느 국가의 소속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심적 구심점을 위해 '민족'은 개발됐고, 발명됐고, 사람들을 현혹시켰고, 오늘 국가를 이루는 토대가 됐다. 쿠텐베르크가 올림픽을 개발해 낸 것도 민족이라는 새 세기를 이끌어갈 구심점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다. 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계급 구분을 무력화 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인 민족국가, 국민국가를 개발해냈다는 설도 있다.

이쯤하자. 민족은 전혀 순수하지 않은 단어다. 처음부터 끝까지 민족이라는 단어가 치밀한 기획하에 만들어진 상상의 산물이라는 앤더슨의 지적은 명쾌했지만 아프다.

'민족은 없다'라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민족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꾸면 꿈이지만 단체로 꾸면 현실이 되기도하니 어찌됐든 민족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대한민국에서 민족은 어떨때 발현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있기도 하겠다.

'자랑스런 태극전사가 불타는 투혼으로 또다시 일본을 격침시켰습니다' WCG 야구 게임에서 한국이 이기자 해설가가 내 놓은 말이다. 야구 경기하는데 태극전사며 투혼이며 격침 따위가 왜 나오는가. 전쟁이라도 일어났나? 야구 선수들의 승리를 '우리들의 승리'화 하는 데 해설가는 열심이었다. 방송을 보도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 거부감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까. '반드시 일본은 이겨야 한다'는 과거의 아픈 민족적 트라우마가 우리를 뭉치게 한다. 남한에서 민족주의가 발현 되는 구석은 다분히 유치한 장르에 국한된다. 원래 민족이 조금 애먼 장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하나, 대 일본 마인드. 반크를 국가적 영웅으로 격상시킨 동해냐 일본해냐는 논란이 있었다. 제 나라 제 바다의 이름을 찾겠다는 순수한 '민족적 마인드'는 높이 살만하고 널리 인정받았었다. 허나 그들이 민족적 주장만 내세우는 통에 그들의 분별없었음 많이 알려져있지 않다. 우리는 동해라는 바다명을 고집했다. 그럼 왜 한반도의 서쪽 바다의 국제 명칭은 서해가 아니라 황해(yellow sea)일까. 왜 한반도의 먼 남쪽 바다의 국제명칭은 남해가 아니라 남지나 해인가. 우리가 목숨걸고 지키려했던 '동해'라는 바다명은 사실 '한반도의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뜻이 아니라 중국의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반크? 짚어도 온통으로 잘못 짚었다. 학적 고증이 아닌 '민족의 감정'이 앞선 탓에 애멀게도 남의나라 바다명을 목숨걸고 지켜려 노력했던 것 같다.

민족 감정이 폭발하는 지점이 또 있다. 아 물론 이 부분은 폭발이라 치기에는 조금은 잔잔해 보이기도 한다. 바로 선진 사회를 평정한 스포츠 선수들의 활약상! 스포츠 뉴스가 시작하면 요새는 이승엽이다. 도쿄돔을 잠재웠단다. 가끔은 일본열도를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넘실댄다. 세계에 흩뿌려져 활약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없었다면 스포츠 뉴스 존망이 불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무슨무슨 팀의 무슨무슨 선수가 무슨무슨 짓을 했다는 식의. 한국 골프 선수들은 왜 또 그렇게나 많은지. 상식 공부할 때 짜증이 물밀듯. 어찌됐든 그들은 한국의 이름을 어깨에 걸고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돼버린 듯하다.

우리의 민족주의가 빛이 났던 또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하인즈 워드. 사실 그 사건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혼혈인, 그것도 흑인 남성과 피가 섞인 한국여성의 아들로 사회의 편견을 견디며 제 삶을 꾸리기에 한국은 적절하지 않은 국가다. 그런 부끄런 제나라의 어떤 양공주의 피가 '반이나' 섞인 그 아들의 성공에 호들갑 떠는 이들. 부끄럽다. 단박 보기에도 워드는 흑인이다. 허나 우리는 그를 국민 영웅으로 추어올렸다. 그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반이 흐른다는 이유다. 그럼 반대로 한국땅에 함께 살지만 한국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외인 노동자들은 우리의 민족일 필요조건을 상실하게 된다. 상상된 혈연을 매개로 또한번 민족의 울타리를 쳐보지만 아무래도 부족하고 애매한 규정이 또 민족이다.

미셸위라는 골프 선수의 이름 옆에다가 괄호를 쳐가며 '위성미'라고 병기하는 이유는 또 뭔가. 미셸위는 미국 시민이다. 미국에 세금을 내고, 미국에서 살며, 한국말도 서투르다. 같은 민족으로 묶이기에는 살아온 문화가 너무나 다름에도 우리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한국계'라는 반토막짜리 단어를 사용해가며 열심히 한국을 입힌다. 상상집단, 필요할때마다 써먹는 민족 공동체 브라보.

현재는 악으로 부르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나치당. 나치당은 Natzional당의 줄임말이다.(정확치 않음 ㅎ)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기본 테제로 시작한 당이다. 이는 극우와 연결돼있다.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뜨거움과 아리안 족의 우월을 내세웠던 나치당의 뜨거움은 어찌보면 많은 부분 닮아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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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꿈틀꿈틀 2008/09/15 21:20 # 삭제 답글

    참으로 공감가는 글이라 제 블로그에 미천한 글을 작성하면서 설득력을 보태려 이글을 링크하였습니다. 하인즈워드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국수주의자들 꼴불견 참 가관도 아니었죠. 그가 평범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 생활하는 사람이었다면 온갖 천대를 하지못해 안달할 인간유형들이 제일 앞장서 '우리민족'임을 강조하죠.. 정말 역겹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내용에 깊은 공감을 하며 정독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WCG 야구 게임" -> "WBC 야구 게임"의 오기를 발견하지 못하신듯 하네요. 뭐 내용을 해치는 중요한 문제도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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